평론(2018)

인간우리(Humam Cage), 현실에 대한 상황극

 

류철하 (이응노미술관 관장)

<비인간적 동물원>은 인공적 공간인 동물원이란 장소를 통하여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회화작품이다. 박용화는 전시장에 동물 우리를 만들고 네온으로 ‘인간우리(Humam Cage)’라고 명명하였다. 박용화가 만든 ‘인간우리’는 인간의 동물성과 현대사회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다.

박용화의 ‘인간우리’는 현대사회의 통념에 갇힌 인간성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을 포함한다. 동물성의 발현으로서의 인간, 혹은 동물성 곧 원초적 생명력과 감각을 상실한 인간에 대한 비유, 그리고 오로지 인간만을 생각하는 야만적 파괴자로서의 인간 등 다양한 인간성에 대한 비유를 ‘인간우리’는 담고 있다.

박용화는 전시장 기둥벽면을 활용하여 사냥감을 잡아놓은 치타 한 마리가 나무에 올라있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나무에 걸쳐있는 사냥감이 바로 양복을 입은 사람이다. 곧 동물성을 상실한 인간무리의 희생제물, 무료한 인간이다. ‘인간우리’는 고리를 문 사자얼굴이 상징하듯 박제화되고 상실된 동물성을 상징한다. 또한 배설물로 뒤범벅된 우리 안의 맹금류는 붉고 싱싱한 먹이(고기)에 관심이 없고 무심하게 다른 곳에 시선을 보낸다.

박용화는 말라서 죽은 동물의 사체 시리즈를 그렸는데 대개 참혹한 전쟁과정에서 버려진 동물들의 재앙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 이미지들이 익숙한 것은 이러한 고발물들이 다큐멘터리, 보도사진, 영상, 기타 통신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야만적이고 충격적인 죽음에 내몰린 동물들은 아무런 준비없이 종말을 맞고 박제화되거나 부패한 모습으로 대지에 눌러붙어 있다. 동물들은 그들이 있어야할 주변의 덩굴과 나무숲, 늪지와 연못, 황무지 등에 있지 않고 거대한 학살의 대열과 희생물로서 있게 되었다.

<죽은 새와의 춤>은 유명한 보도사진을 패러디한 것으로 말라붙은 새를 들고 나오는 인물을 작가 자신의 얼굴로 대체하여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공감과 슬픔을 표시한다. 또 다른 그림에는 오랫동안 비어있는 동물우리에 갈비뼈가 드러난 채 헐벗은 멧돼지들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고, 전쟁의 부산물인 듯 튕겨져 나온 알수 없는 부품들과 그것을 보는 엽총을 든 사람의 무표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갇히고 버려진 동물연작>인 악어, 염소, 곰, 조랑말, 표범들은 처참하게 말라서 그것 자체로 전쟁을 증언한다. 굶주리고 변형되며 훼손된 시체더미들은 죽음이 갖는 야만스러움과 경악스러움, 종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이러한 주검을 톤을 조금 낮춰서 담담하게 표현하였다. 종말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종말은 모두에게 동시적으로 찾아온다. 죽어가는 동물을 통하여, 전쟁과 인간의 잔학성,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러한 동물과 다를게 없다는 또 하나의 비판이 그림을 통하여 자리한다.

박용화가 동물 그림을 그린 것은 시골정육점을 배회하며 가졌던 화가 베이컨에 대한 생각 곧 ‘우리 자신이 고기이며 잠재적을 시체가 될 것’이라는 구절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동물들을 통해 삶의 적나라함과 끔찍함에 눈뜨고 내면의 잠재의식과 사물에 대한 이해를 더욱 촉발시켰다. 화가 베이컨은 대규모 도살장과 고기에 대한 그림에서 감명을 받았는데 그에게 고기는 십자가에 못 밖힌 그리스도의 상이라는 주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박용화의 <우리 안에 진열된 내면>도 바로 이러한 것을 비유한다. 나무위에 걸린 살코기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동물성이자 ‘살아있음’ 이다. 그림은 오히려 이러한 고깃덩이를 통해 죽음에 저항하는 생생한 힘이자 메시지로 다가온다.

<예고된 죽음을 품은 동물>은 해골을 들고 우리를 거니는 유인원을 그리고 있는데 인간과 동물성에 대한 총체적인 비유로 보인다. 어쩌면 인간은 불행한 원숭이인지도 모른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그것을 모른 채 세계라는 ‘우리’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불안과 공포라는 줄을 불타는 줄도 모르고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이러한 상징을 적절히 담고 있다. <불안이 담긴 동물원>은 또한 이러한 죽음과 생존이 해골과 고기 몇 점으로 상징화된 동물우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텅 빈 동물원 우리는 생경하게 황폐한 마음을 담고 있다.

<녹색물감을 먹은 동물>은 낯선 외국인의 어깨를 밟고 있는 고양이과 동물의 입에서 푸른물감이 얼굴로 흘러내리는 작품이다. 낯설고 기이한 그리고 혼란스러운 변형이 그림과 함께 있다. 녹색의 물감은 생물학적 변형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강화하면서 시각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인간우리’에 담긴 동물과 인간의 비유적 표현, 그리고 우리의 창살로 비치는 그림자 너머 바깥 벽면에 <눈을 감은 관람자> 시리즈의 연속된 인물그림이 있다. 작가이거나 작가 주변의 인물을 그린 이 관람자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빈 바닥에 얼비친 이중표정과 함께 작가가 펼치는 <비인간적 동물원>은 적나라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상황극, 교훈적인 공연장으로서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시각적 상징으로서의 하나의 제의를 ‘인간우리’라는 상징으로 펼치고 있다.

<비인간적인 동물원>은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은 삶의 모든 풍경이 동물원 우리와 같은 인공의 무료함이고 삶은 그 생생한 힘을 되찾기 위해 인간적인 현실과 육감, 피의 희생이 필요하고 그것은 날 것의 ‘고기’와 같이 우리의 통념을 깨는 하나의 시도를 우리 자신이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동물원>은 끔찍한 현실과 도덕이 동물원이라는 하나의 제의와 비유를 통하여 상징화된 하나의 공연장이자 장치이고 박용화는 이러한 동물성으로부터 생생한 본능의 힘과 서사성을 발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