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가둔 표정
시인 김희정
새가 자유롭다고 말한다. 바람이 세상 어디에도 갈 수 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보는 시각에서는 그럴 수 있다. 새는 날개를 펴 허공을 가른다. 피곤하면 날개를 접는다. 바람은 사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한다. 사물에 자신을 입혀 자신의 모습을 본다. 풍선에 들어가면 풍선이 되고 꽃에 들어가면 꽃이 된다. 그런데 공간을 만나 새로운 모습이 되는 것은 바람뿐만이 아니라 작가도 그렇다.
작가는 자신의 시선과 감정을 공간에 투영한다. 공간을 통해 작품을 짓는다. 그러다 공간에 묶이기도 한다. 공간이 가진 자유로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선은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고 정의된 공간을 재발견할 때 자유로워진다.
우리는 닫힌 공간인 집에 산다. 그래도 답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느낌 때문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집은 동물원의 우리와 같아진다. 집에 갇혔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어진다. 비슷한 공간에 사는데도 어떤 사람은 답답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공간에 투영된 사람의 미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가져온다. 사람과 얼굴과 동물의 얼굴이 작품이 작품에 등장한다. 얼굴도 하나의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감정과 색을 넣을 수 있는 곳이 얼굴이다. 인간은 얼굴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표현한다. 말로 하지 못한 많은 것이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 감정을 숨겨도 그 사람의 상황이 보이는 것이 얼굴이다. 손바닥만 한 공간인데 많은 것이 담긴다. 담은 것이 물건이 아니기에 가능하다.
박용화 작가는 공간에 감정을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대상을 통해 나타난 얼굴의 표정을 보자. 이 표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왜 이런 표정이 나왔을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갤러리의 몫이다. 어떤 이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나도 저런 표정을 지은 적 있다. 경험에서 오는 공감이다. 수 가지 표정을 작품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喜怒哀樂)를 얼굴에 담아 감정선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Human cage(목재, Oil on canvas, 전시 전경, 2018~2021) 작품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한 공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눈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기쁜 눈, 화가난 눈, 슬픈 눈, 즐거운 눈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인데 말이다. 작품의 옆에 목재 우리가 있고 그 안에는 동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박용화 작가는 공간과 그 공간에 사는 사물을 통해 여러 감정을 보여준다. 자신도 갇힌 공간에 있으면서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누가 갇혀있는 것인가 하고 묻는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있는 ‘나’를 보게 한다.
작가의 시선은 작품에 나와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의 마음에 닿는다. 이런 공간에 있는 사물을 통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 어떤 감정을 얼굴에 담을 수 있는가. 마음에 넣을 수 있는가.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공간은 주로 동물원이다. 동물원이 주는 상징이 있다. 자유롭게 살던, 혹은 살아야 하는 동물을 인간이 잡아와 우리에 가두어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도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 갇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신적인 것이다. 형태가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똑같다는 말을 하고 있다.
Human cage 작품은 박용화 작가의 이번 전시 작품에서 볼 때 다른 작품까지 끌어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1차 미술(평면)과 2차 미술(조형)이 잘 섞인 퍼포먼스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세상은 동물원이 필요 없는 세상이다. 못 먹고 살 때 사람들은 아이 손을 잡고 동물원에 갔다. 동물원을 통해 외계의 세상을 보았다. 그런데 그때와는 경제의 규모가 달라졌다. 이런 세상에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작가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두어진 몸을 통해 너도 지금 마음의 우리에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라고 말한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똥을 싼다고 집이 아니다. 숨을 쉬고 있다고 사는 게 아니다.
이 사실을 작가는 동물원이라는 소재를 통해 표현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철조망에 걸린 나무가 잘린 그대로 고사목이 된 공간을 보여준다.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박용화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나의 ‘우리’를 걸어 나올 수 있다면, 내가 사는 공간의 크기가 물리적으로 어떠하던지 그 공간은 나를 옭아매는 줄이 아니다. 나 스스로 선택한 공간, 인정한 공간은 닫힌 공간도 가두어진 공간도 아니다. 이런 공간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공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