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2021)

고유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사회에 던져지며 개성 상실
눈·코·입 지워 표정 흐릿하게
상품처럼 진열된 상황 극대화

박용화 작 ‘박제된 공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주인공 가족이 사는 집은 반지하다. 그들의 집에서 바깥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창이다. 그 창을 통해 거리의 풍경이 들어오고, 햇빛도 쏟아져 내렸다. 작가 박용화의 첫 작업실은 전형적인 반지하로 영화 ‘기생충’ 속 가족의 집과 흡사했다. 그곳에도 바깥으로 향하는 쇠창살에 둘러싸인 창이 나 있었다.

기생충 속 반지하는 외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작가의 반지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일상으로 노출됐다. 유화 물감이 원인이었다. 물감 냄새가 창을 타고 거리로 퍼져 나가자 사람들은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고, 그의 창은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탐색처가 되었다. 창을 사이에 두고 작가와 사람들의 시선과 대치하자 작가의 마음은 까닭없이 움츠려들었다. “마치 내가 동물원의 동물이 된 듯”한 심정이었다.

쇠창살 너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동물원이었다. 반지하 생활 이후 그의 발걸음은 무언가에 이끌린 듯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동물원 우리에 상품처럼 갇혀있는 동물들이 들어왔다. 했다. 작가는 “상품을 진열해 놓은 쇼윈도 같았다”고 당시 본 풍경을 기억했다.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화려한 조명과 소품들을 배치해 놓은 것처럼, 동물원 우리도 바위나 연못, 나무나 풀 등의 인공적인 소품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동물원을 둘러보면서 동물을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동물원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동물원을 둘러싼 시스템이 선명하게 보였다. 동물 우리의 쇠창살에서 거대한 힘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 그것의 실체는 두려움이었다. 작가는 문득 쇠창살에 갇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두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인간 역시 동물원 속 동물처럼 거대한 힘에 의해 구획된 모순된 구조 속 일원에 불과하다는 자각의 결과였다.

사유의 연상 작용은 결국 인간과 동물원에 갇힌 동물에 대한 동일시로 흘러갔다. 인간사회의 모순을 동물원에 빗대어 발언하는 작품 ‘박제된 공간’ 연작은 그런 비화로 탄생했다. “결국 동물원에서 발견한 것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었다.”

화면에는 동물과 동물을 둘러싼 나무나 풀, 바위 등의 동물원 우리 속의 풍경이 표현되어 있다. 동물원을 그리던 초기에는 눈과 코, 입 등의 동물 얼굴을 그렸지만 지금은 지워진 얼굴로 표현된다. 지원진 얼굴은 동물의 개체성을 상실시킨다. 상실된 개체성은 불안한 감정의 근원이 되었으며, 그 불안감은 동물원 우리 속 풍경에 구현한 가상의 사건들에 강화되었다. 일테면 새 장속 벽화에 얼룩을 잔뜩 그린다든가 하는 식의 표현방식이었다.

“동물과 풍경의 관계에 집중하기보다 동물이 상품처럼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풍경 묘사에 더 집중한다. 동물원 우리를 불안한 공간으로 표현한 것도 그런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유로운 개체로 태어나지만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거대한 힘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일원이 된다. 그 시스템 속에서 본성이나 고유성은 불편한 것으로 취급받고, 시스템이 원화는 표준형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러면서 본질이나 고유성은 점점 상실되어 간다. 작가는 동물권이나 인권을 소리 내어 외치기보다 인간과 동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대를 되짚는 것으로 대신한다. 강렬한 발언보다 현상을 시각적으로 펼쳐놓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자각을 이끄는 것.

최근에는 소품 위주의 드로잉이 대세로 등장했다. 드로잉에 동물은 배제되고, 동물이 갇힌 우리의 다양한 풍경을 그린다. 하나의 드로잉이 개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드로잉 작품 전체를 하나의 기념비처럼 지위를 부여한다. 드로잉 속 풍경은 일상의 경험이나 사건에서 발현되는 생각이나 반응을 재해석한 풍경들이다. 다분히 즉흥적인 감각으로 주변의 공간을 인지한 풍경들이다. “우리 주변도 공원이나 놀이터도 동물원 우리처럼 인공적인 자연이다. 자연이 자꾸 조작되어 자연스러움이 사라져가고 있다. 나는 그런 현상을 드려다 본다.”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황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