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2021)

홍예슬(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HONG Yeseul(Curator at DMA)

 

박용화를 읽는 세 가지 방법,

유목적 주체와 동물원

 

내 집 마련,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갖는 주제이다. 생후 4개월의 갓난아기가 강남 압구정동에 위치한 24억원대의 아파트를 매입했단 기사에 달린 수 많은 댓글들은 이러한 관심을 반증할테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주거 안정성은 그 중에서도 생존권과 직결되기에 언제나 민감한 주제가 된다. 집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현재,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규명으로 이어진다. 박용화는 이러한 ‘공간’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작가이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규정되고 삶의 공간적 차원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그 상호작용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주어진 상황이나 선택적으로 여러 공간으로 이주한 경력들 때문일까. 작가는 이러한 유목적인 삶 속에서 낯선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주변을 관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개인 공간이 없었던 작가는 성장하고서도 항상 노출되어 있는 공간에서 생활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작업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공용 공간인 복도에서 작업했고, 2013년부터 현재까지도 전국의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유목적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작가라는 직업 역시 작품과 자신을 대중에게 보이고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자신을 디스플레이하는, 일종의 진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 대전의 ArtSpace 128에서 열린 개인전인 《진열된 풍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은〈구석으로〉(2020) 이었는데, 곰이 구석진 곳에서 숨어 쉬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무대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안식처에서 쉬고 싶은 곰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레지던시는 그 공간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오픈스튜디오 등의 행사시마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말 그대로 ‘오픈’해야만 한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유목적 주체, 즉 작가 자신에 대한 위로처럼 보였기에 더욱 눈길이 간 작업이었다.

 

이처럼 여러 장소를 유목하며 겪었던 경험과 그로 인해 유발된 감정으로 공간을 재해석하는 작가는 물리적인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환유하여 표현하거나 공간에 직접 들어가 진행하는 형태의 작업으로 공간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동물원’이라는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채집된 이미지를 회화와 설치로 제시하며 개인적이지만 집단적인 논점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다음과 같다. 작가가 반지하 작업실에서 생활하던 중 우연히 창문 밖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된 순간이다. 반지하 쇠창살 사이로 마치 관람을 당해버린 순간을 경험한 후로는 불안한 공간에 대한 의심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원 근처 지역에 살았던 유년시절에 자연스럽게 동물원에 자주 방문하던 기억과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다시 관람자의 위치에서 동물원을 방문하니, 이전과는 다른 동물원의 풍경이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관람당한 대상이 되어버린 경험은 인간과 동물의 위계적인 관계, 관람 대상과 관람하는 주체의 전복을 생각하게 했다. 이러한 경험은 〈Human cage〉(2018~) 인간 스스로를 인공적인 공간에 갇힌 동물로 인식하는 설치 작업으로 구현되었다. 이후 작가는 새로운 지역을 방문 할 때마다 동물원에 방문한다. 박용화는 이처럼 동물원과 우리가 살아가는 인공적인 현대 사회의 생리(生理)와 유사함에 착안에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자연을 가장한 인공문명과 현대의 모습을 병치시켜 작업으로 풀어낸다.

 

 

박용화를 읽는 세 가지 방법,

자연을 가장한 인공문명

 

박용화 작가와는 대전시립미술관 청년작가지원전인 《넥스트코드 2019》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넥스트코드 2019》당시에는 동물원이라는 공간적 설정 외에도 〈불안이 담긴 동물원〉(2018), 〈억압된 공간의 본능적 표현〉(2018) 등 말라비틀어진 동물들의 사체, 배설물로 뒤범벅된 새들과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동물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이 본인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진귀한 동물을 수집했던 데서 유래한다. 동물의 생활공간이 아닌 철저하게 인간의 눈요깃감을 위해 설계되었기에 동물원 속 동물에게 자율성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늑대가 사라진 우리〉(2021). 〈늑대의 우리〉(2021), 〈우리 안 얼굴〉(2020), 〈박제된 불안〉(2019) 등에서는 동물 사체, 배설물, 해골, 불, 고깃덩어리 등 죽음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동물원이라는 공간 소멸을 향한 작가의 기원을 보여준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미술원, 우리와 우리 사이》이나 대전 ArtSpace128 개인전인 《진열된 풍경》에서는 공간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구성 요소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인공 자재물 등의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구조물이나 새의 배설물로 흘러내리는 나뭇가지들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인위적으로 조성되고 꺾이고 불편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관람객의 시각적 유희를 위한 인공구조물들과 거친 마감의 벽화들은 그저 관람객들이 동물을 편안하게 관람 할 수 있는 인공적이고 통제된 구조물일 뿐이다.

 

현재 도시에서의 나무, 돌, 풀들은 자연적으로 자라거나 놓여 있는 것이 아닌 모두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들이다. 그리고 역시 동물원의 우리를 구성하는 나뭇가지나 철제 등 인공적 구조물을 그린 드로잉 역시 모두 인공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자연의 인공적 재구성〉연작(2019~)의 수많은 드로잉 중 겹치는 장면은 하나도 없이 인공적인 구조물로 가득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동물원은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기에 어김없이 동물의 종(種) 간 위계질서가 등장한다. 소위 잘나가는 호랑이라고 할지언정 그 꾸밈새는 피해가지 못한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2020)는 웅장한 벽화, 가짜 폭포, 타일 벽화 등 동물원의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보다도 못한 실제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이 대조된다. 흐릿하게 표현된 호랑이는 그 기세는 온데 간데 없이 마르고 힘 없는 모습이다. 작가의 조약한 구조물 중 요즘의 관심사는 암석이나 돌을 표현한 구조물이다. 천 위에 폴리우레탄을 색칠한 구조물로〈펭귄〉(2021) 등의 작업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작가는 동물 개체에 대한 호기심이나 동정심을 넘어 동물과 인간이 맺고 있는 양가적인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물원 안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사는 동물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박용화가 표현하려는 것이 동물권 그 자체는 아니다. 〈생존을 위한 식사〉(2020), 〈그가 먹고 남은 고기〉(2020), 〈그들이 먹고 남긴 고기〉(2020)를 병치시킨 작업은 작가가 대전의 동물원인 오월드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자신이 식사가 아닌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동물의 그것이나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화면에서 고깃덩어리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본인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렇듯 작가의 관심은 동물, 인간을 나눌 것 없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열려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상징적 공간의 동물원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박용화를 읽는 세 가지 방법,

미술 생태계 속 이상주의자

 

박용화는 현실적인 이상주의자다. 현실과 이상이 한 문장에 동일한 의미망으로 읽히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박용화는 그렇다. 《진열된 풍경》은 인위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인공 생태공간을 담은 동물원 풍경을 담아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의 풍경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도록 기획했다. 그리고 현존하는 동물원이 사라진 미래를 보여주는 〈그들이 사라진 공간〉(2019)이나 〈미완의 모뉴먼트〉(2020)는 사라진 동물원이 기념비로 남게 될 가상의 설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동물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현실의 통제된 공간을 반영한다. 그리고 공간 소멸을 향한 염원을 담은 상징을 화면 곳곳에 드러내거나 숨겨둔다. 내게는 그것이 예술의 사회적인 실천과도 적절한 균형이 맞아보인다.

 

박용화 작가는 공간에 대한 특유의 관심으로 무드를 만들어 낼 줄 안다. 박용화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갈 때면, 개별적인 작업의 흥미뿐만 아니라 공간과 어우러지는 디스플레이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만족하며 나오곤 한다. 개인적으로 〈무제〉식의 제목을 성의 없다고 생각하기에 성의 있는 작명 센스 역시 주요 만족 포인트 중 하나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 세계가 명확하고 이를 최소한의 텍스트로 전달하고자 노력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직접 설계와 감리, 제작까지 진행하는 인간 우리(cage)를 보여주는 공간 설치 작업인 〈Human cage〉(2018~)를 시작으로 기획 전시를 시작하게 된 작가는 올해 대전의 테미오래에서 기획자로도 활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대전 지역 미술대학의 연합전시를 추구했다는 점인데, 개인 작업에 몰두하는 미술 대학의 기질적인 특성상 뚜렷한 구심점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박용화 작가는 함께 잘되는 건전한 미술 생태계를 꿈꾼다. 불가능해보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향해 한 발 자국, 한 발 자국 묵묵히 걷고 있는 작가를 보고 있노라면 비장한 엄숙미마저 느껴진다. 나 역시 미술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또 실천하리라 마음먹게 된다. 자조적으로 하지만 비관적이지 않은 박용화같은 동료가 가까이 있어 큰 위로가 된다. 그의 행보를 응원하며, 박용화가 꿈꾸는 미래가 도래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