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2017)

박용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마틴 배런

고깃덩어리

얼마 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공군부대 돼지공장을 시찰한 <조선중앙TV> 보도의 캡쳐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댓글이 달릴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진”이라는 촌평과 함께. 나른한 봄날 오후에 졸지 말라고 서로의 어깨를 흔들어 주듯, 가벼운 SNS 링크 복사로 돌아다닌 그 장면을 보면서 여러 작품들이 오버랩 됐다. 먼저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까지 맡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화 <록키>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샌드백 삼아 치던, 냉동창고에 거꾸로 매달린 돼지 고깃덩어리들이다. 그런가 하면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복제 인간들이 그러한 모양으로 매달려 이동하고 있는 매시브한 장면이 나온다.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옆 사람의 모습도 기억이난다. 이따금씩 돼지고기를 먹다가 스며든 등급 도장 자국을 볼 때면, 내가 지금 살육된 고기를 먹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식용잉크라는 걸 뻔히 알지만, 찝찝한 기분을 완전히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그건 아마도 그러한 도축의 과정이 가지고 있는 서늘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사랑받는’ 고기임에 틀림없는 돼지고기가, 냉동창고라는 공간에서 영상 이미지화되면 갖는 특별한 미학은 상당히 강렬하다. 신선함을 유지하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의 살이 되기 위해 죽어진 육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란 듯이 전시해 놓은 불쾌함을 머금은 공간. 영하 30도에서도 스며나오는 피비린내와 응고된 채 맞이하는 쇠몽둥이와 쇠톱의 아픔을 상상케 한다.

이런 이유로 고깃덩어리 모티브는 이미 많은 화가들에게 그려져 왔을 것이다. 어차피 영상은 미술로부터 차용해온 것들이므로, 서양미술사 책을 한 권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장-시메옹 샤르댕의 <고깃덩어리가 있는 정물>이 먼저 연상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샤임 수틴, 샤갈, 피카소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의 음습함이 ‘이쪽’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압권이라고 본다.

첫 만남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고깃덩어리를 소재로 한 작가들이 누가 있을까. 필자의 기억으로는 서고운, 신규리 등 젊은 여성 작가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3월 말, ‘박용화’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날은 필자가 ‘대안공간 눈’(이하 ‘눈’)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 날이기도 했기에, 박용화 작가와같은 시기 옆 동(예술공간 봄)에서 전시를 했기에 함께 ‘아티스트 토크’를 했다는 인연이 좀 더 특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 이후로 ‘아직까지는’ 다시 연락을 주고 받거나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글은 그 어떤 부탁이나 우애의 결과물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동료 작가’로 칭하는 것도 간질거림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날 아마 작가 간엔 가장 많은 질문을 주고받은 사이였을 것이다. 평소 입을 ‘잘 터는’ 필자의 아티스트 토크에 박 작가도 중요한 몇 마디를 던져주었고, 먼저 토크를 진행한 박 작가의 진행 능력도 굉장히 좋았다. 그날 그는 힙합 패션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시기엔 나도 그런 사람이더라는 회상을 하다가 너무 깊이 들어갔다 싶었는지 “아.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착한.. 착합니다.”라고 선회하는데, 관중들의 웃음보가 터졌던 게 기억난다. 필자는 사실 그런 자성적 진술 앞에서 입 꼬리를 올리는 행위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라 웃지는 않았는데, 분명 힘이 세 보이는 체격 조건에서 나오는 해명성 어눌함이 주는 귀여움 같은 것이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웃게 한 것 같다고 이해는 했다. 그리고 거기엔 타인에 대한 소소한 위로와 축복도 담겨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매스 미디어를 전공하고 작품 세계도 그 쪽에 기댄 측면이 큰 터라 질의응답 현장에서는 보도 영상을 소재로 한 <폭력의 단상>에 대한 어떤 확인들과, 각목으로 직접 짜 놓은 전시 선반 등에 대한 호기심을 표하느라 바빴었다. 그러나 ‘눈’의 가장 넓은 공간인 제1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던 박용화 작가의 그림들은 아티스트 토크 전에 그 곳을 둘러보면서도 이미 필자를 한 번 짓누른 상태였다. 뒷짐을 지고 들어가자마자 손이 차렷 자세로 바뀌었던 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다. 사실 ‘눈’이 내걸고 있는, “젊고 실험적인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이라는 기치를 충족시키는 일이란 무척 힘든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고’ 까지는 주로 30대까지를 의미하는 물리적 범주니까 어렵지 않겠지만, ‘실험적’이라는 조건은 그 말을 정의하는 것부터 굉장히 논쟁적일 수 있고,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에 ‘맞는’ 작가를 찾는 것은 또다시 까다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날 느꼈던 것은, 서로 다른 다섯 공간에 신기할 정도로 절묘하게 가장 어울리는 작품들이 배치된 것 같다는 점이다. 크게는 한 공간임에도 레이아웃과 벽의 느낌, 빛을 받는 각도와 조도가 조금씩 달랐던 각 전시실에 설치된 장한나, 박햇님, 이현무 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박용화 작가에 대해 이렇게 포커스를 맞춰보는 것은 필자와 왠지 모를 공통분모가 많아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

무표정한 남자의 얼굴 속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반쯤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용선의 세계와도 닮았다. 앞에서 잠깐 고깃덩어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열거하며 아는 척을 하면서는, 거기에 꼭 동물의 사체들을 이용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들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박용화의 <물 불 가리지 않는 행위>에 뜬금없이 상어가 죽어 피 흘리고 있고, 오함마로 내려치고 있는 것이 해골인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허스트도 생각이 난다. 이에 대해 작가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별다른 이유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그 때의 공간이 주는 느낌이 그런 이미지들을 더 그려내게 했다고 부연해 주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궁금했다. 그래서 더 다가가기로 했다. 아티스트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뜬 작가들도 있었는데, 다행히 박 작가는 제1전시실 문 앞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다시 필자가 서 있는 안쪽을 들여다보는데 순간적으로 이사람이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이거나>의 ‘그 남자’가 맞구나 싶었다. 전시공간이 그림 속 공간의 느낌과 굉장히 유사했기 때문에 기둥 뒤에서 그림 속의 도베르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드는, 무척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 긴장감이 왠지 좋았다. 그런 느낌 속에서 그와 악수를 했다. 당신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고, 한 일 년 쯤 후에는 당신이 있는 곳 어딘가로 찾아가 더 깊은 대화도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반가운 듯 심드렁하게 그러라고 하는 박 작가로부터 그의 정체성 같은 것이 사악 느껴졌다. 물론 그 느낌은 결국 틀려버릴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이 사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체구나 얼굴의 느낌 같아서는 필자와 같은 전라도 쪽 집안인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한국 남자들은 소주를 한 잔 해야 서로를 좀 알게 되는데 하는 아쉬움으로 그의 작품들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그 중에서 <기억의 파편들>이나 <불타버린 공간의 불안>은 교외에서 몇 개월 이상 머무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작업들임이 분명해보였다. 개인적으로 전자는 고깃덩어리보다도 불 위를 뛰고 있는 남자에 더 시선이 갔는데, 흰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KKK나 중동의 테러리스트보다는 한국의 시위대나 어떤 익명의 누군가를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후자는 해골보다도 창문의 그을음으로 안쪽은 전소된 것으로 추정되는 컨테이너 박스 자체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건 마치 오늘 하루도 당장 잘 수, 또는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별 일 아닌 듯 사냥 흉내를 내고 있는 남자와, 다운재킷을 입고 해골을 들고 있는 남자가 한국 남자들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러한 ‘명시적인 것 같으면서도 암묵적인’ 표현 방법은 ‘임시의(temporary)’ 거처가 주는 지위 불안적 상황을 뚜벅뚜벅 걸어오며 기록해온 ‘맥락(context)’을 잡아 보라는 숙제 같은 느낌도 줬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야말로 근현대적(modern)인 ‘입시용’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은연중에 오늘날의(contemporary) 미술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였다.

감정의 공장

박용화의 이번 ‘Emotional Factory’전에 대해 한 신문사는 “서양화를 전공한 박용화 작가의 자전적 배경을 감정의 공간에 시각화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된 박용화 작가는 주로 일상의 경험과 사건들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공간에 전복시켜 표현한다.” 라는 설명을 포함한 짧은 기사를 내주었다. 사실 작가에게 있어 매체가 동원되어 짧게나마 홍보를 해주면 큰 힘이 된다고 느낀다. 필자 역시 몇몇 매체에 내 전시가 소개되면 무척 고맙고 기념으로서의 의미도 컸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과 감정들을 공간에 전복”이라는 ‘멋진’ 표현을 단번에 이해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브리핑 기사가 갖는 ‘최소한의 정보 제공’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일 것이고, 작가노트에서 잘려나간 앞부분을 찾아오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눈’의 블로그로 들어가면 전시소개에 올라와 있으므로,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기사에서 소개되지 않은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주어진 상황이나 선택적으로 여러 공간을 이주하게 되었다. 이런 유목적인 삶속에서 낯선 불안감에 적응을 위해 자연스레 주변을 답습하고 관조하게 되었다. 낯선 공간을 관찰 하는 나의 시선은 그 곳을 작업으로 이어가는 실험실이 되어 갔다. 이렇게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환유하여 표현하거나 공간에 직접 들어가 진행하는 형태의 작품을 진행하게 하였다.”

아티스트 토크에서 들은 내용을 덧붙이자면, 작가의 부친은 작은 공장을 하였는데, 그 삶이 자신과는 별개로 느껴졌었지만, 어느새 보니 자신 역시 ‘손’으로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을 하고 있었고, 그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역시 박 작가는 필자의 질문에 앤디워홀의 ‘factory’ 개념은 신경 쓴 바 없으며, 목조 전시대 역시 “단순히 잘 진열해놓기 위함”이라고 답했으나, 컨템포러리함과 공장의 ‘건조대’ 느낌을 자아내는, 그 어떤 ‘적절함’이 떨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전시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없는 그림이 하는 말

제목 짓는 데에도 소질이 있는 작가는, 기본적으로 말로 하는 해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나 소극성이 없는 사람 같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작품 자체가 갖는 아우라가 그 만의 기능을 충실히 해내지 못할 것을 경계하는 듯했다. 어쩌면 필자가 박 작가를 오래 붙잡고 있지는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그에 대해 인터넷으로라도 더 알아보기로 했다. 작년 여름, 춘천 갤러리에이치에서 박소현 작가와 2인전으로 진행했던 ‘고기에 대한 고찰(Meet Meat and Eat)’전시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눈’에서의 이번 전시와 겹치는 작품들도 있었고, 못 본 작품들도 있었다. <장막 안의 내면>과 <내면의 붉은 덩어리>는 고깃덩어리만을 소재로 하여 인간 내면의 물리적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꼭 “약한 자는 고기가 되고 강한 자는 먹는다.”는 ‘격언’스러운 결론으로 데려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진열된 죽음에 대한 드로잉>이나 <붉은 얼굴> 등이 갖는 외연으로부터 확장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 라는 신체 역시 하나의 공간으로 전제될 수 있음을 상기할 수도 있고, <잠재된 폭력>은 따로 떼어 반성 또는 스스로를 무서워하는 느낌의 혼재로 볼 수도 있겠다. 말 없는 그림이 말 하는 바들이 풍부했고, 한 편으로는 그래도 제목들은 ‘무제’가 아니라 적절한 힌트로 매력을 더 했다는 생각을 했다.

박용화를 더 이해하기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용화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가 주목하는 내면의 아픔에 좀 더 공감하고 싶었고, 그림이 갖고 있는 ‘침묵시위’ 같은 느낌의 뿌리를 더 캐내보고 싶었다.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무척 중요한, 김승옥의 소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에는 ‘나와 어머니에 의해 도시로 보내졌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누이가 등장한다. 작중 화자인 남동생은 “도시에서는 항상 엉뚱한 일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어떠한 일들이 누이를 할퀴고 지나갔었을까, 어떠한 일들이 누이에게 저런 침묵을 떠맡기고 갔었을까.” 라며 안타까워 하지만, 부유하는 존재가 된 누이만큼이나 개인적 해석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 채 답답해하는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서사적 정보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다 말하지 않는 사람과 제대로 말을 걸지 못한 사람 사이의 어떤 진공이 본질적으로는 박 작가와 필자 사이, 또는 우리 모두의 사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그러한 긴장이 좋았다. 김승옥의 소설과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산업화로 물든 모던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역시 모던함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크다면, 이쪽 상황은 좀 더 컨템포러리하다는 것이다. 뭐랄까 좀 더 유연함이 있다고 할까. ‘인권’과 ‘인본’은 아무래도 그 스케일이 다르니까 말이다. “이젠 아버지와 술친구다. 용서 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한 그의 현재로부터, 3년 정도만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울산북구예술창작소에 머물며 작업한 바를 보여준 2014년 말의 ‘신진작가 릴레이전’에 대한 기사도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박용화 작가는 우리 주변의 현상들을 파악하여 사진으로 남기고, 이를 다시 평면과 설치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박 작가는 콘크리트 구조물 내에서 매일 반복된 생활을 하는 현대인을 동물원에 갇힌 동물로 인식한다. 그는 ‘누가 호랑이를 잡아먹었나?’라는 주제로 상실된 동물성, 즉 ‘본성’을 찾으려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준다.”

이제 좀 그에 대해 알 것 같았다. 돼지들이 매달려 있는 냉장창고 안에서 DSLR 카메라를 두 손에 꼭 쥔 채, 지금보다 좀 더 앳된 얼굴로 ‘청년작가 박용화’라는 캡션이 달린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그는 무척 스마트해보였고, 책임감이 강해 보였으며, 동시에 자유로움과 진지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기계적으로 잘 붙는 이 말 쓰기에 앞서, 정말 내가 그렇게 생각하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써 버리는 말이 있는데, 여기엔 진심을 가지고 쓰기로 한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돼지의 발, 뱀의 발

북한의 돼지공장 얘기로 시작했으니, 마지막 문단도 그로부터 풀어나가 볼까 한다. 지금 그 곳은 “강성대국이 되어 전 인민에게 고깃국을 먹이겠다.”고 한 선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일 년에 한두 번 국경일에 먹는다는 국물조차도 “돼지가 발만 담그고 갔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 있어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공간들도 잠시 발만 담그고 가는 곳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다. 전시 공간이 만남의 장소로 활용될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문화생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일 수도 있다. 그만큼으로라도 반갑다. 하지만 결국 작가 한 사람 한 사람, 작품 하나하나를 각인시키기가 너무 어렵다.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고, 누구 하나 공짜로 들어왔으니 대신 작품 하나씩 좀 사달라고 붙잡는 것도 아닌데 그런 데 머무르는 건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아직 많은 것 같다. 왜일까. 어쩌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계를 들여다보다 자신의 어떤 진솔한 부분과 만나는 게 두렵고, 그것이 왠지 예상되어서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그런 만남도 자처할 수 있기를 원한다. 박용화 작가가 <눈을 가려도 보이는 것들>과 <어둠 속에서 빛을 마주하다>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한 바처럼, 무지와 외면, 공포의 <더미> 속에서도 그것들을 딛고 우리는 사랑과 희망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뭔가 두려움 없이 돌아다니는, 박용화의 세계, 그리고 박용화와 같은 ‘동료 작가’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와의 두번째 만남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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